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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살아가기/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

밤 새서 걷기, <한강 나이트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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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걸 좋아하는 나와 솬은 생각보다 많은 걸음을 걸었다.

예전 솬의 집에서는 한강이 가까워 한강변을 그렇게 많이 걸었는데, 밤 중의 한강은 경관도 아름답고 바람도 선선해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을 꼭 붙들곤 했었다.

그런 걸음이 아니고서라도 나는 걷기를 무지 좋아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솬도 걷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정처 없이, 목적 없이 함께 걷곤 했었다.

요즘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고 있는 순례길도 사실은 10년 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는데, 스페인어를 전공했어도 스페인에 1도 관심없던 나지만 santiago de compostela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걷기> 한가지 때문이었다.

총 4가지의 길로 분류되는 순례길은 프랑스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바스코지방을 거치는 28일정도의 코스가 가장 인기 만점이다. 그쪽길은 날씨도 좋고 선선할 뿐 아니라, 스페인에서 잘 사는 도시에 속하는 바스코 지방을 지나면서 볼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남부를 지나는 40일 코스에 욕심을 내곤 했었는데, 그만큼 스페인의 오래된 도시를 지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오랜 시간을 걸을 수 있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순례길에 대한 로망은 적어도 20년 뒤로 미뤄졌고, 하루에 한 번 이상 솬에게 나는 걸을 것이다 라고 엄포를 내리며 순례길 가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솬은 절대 혼자 못 보낸다며... 왜때무네... 그럼 같이가면 되잖아... 근데 같이는 또 싫대... 베드버그가 무섭대.. 아 내가 잡아줄게...

그러던 차, 솬 인스타그램도 구경하고, 재미있는 글도 보고 있던 찰나 한강 나이트 워크를 발견했다.

와,
한강을 밤을 새워서 걷는 대회라니

저 한 문장만 봤을 뿐인데도 가슴이 두근댔다. 게다가 같이 걸을 사람도 있다! 만세이!

예전에 언제였지, 대학다니던 시절 2014년이었나 2015년이었나(2012년이었다, 와 맙소사) 수정이랑 같이 한참 달리기는 둘째고 선물 받으려고 뉴발란스 러닝클럽을 열심히 다니던 시절, 그렇게 열심히 달린게 아까워 손기정 10km 마라톤 대회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11월달에 있던 경기였는데, 둘이 손잡고 새벽같이 달리기를 하고 버스에서 쿨쿨 자면서 집으로 돌아와 달리기를 마쳤었다.

이후에도 나이키에서 주최하는 달리기 러닝클럽을 가곤 했지만, 그건 상암에서 열려서 한 세번 간 뒤 도저히 힘들어 그렇게 달리기를 마무리 지었었다. 가는데만 세시간이라니. 집에 돌아오면 무려 11시 끔찍한 경험..ㅋㅋㅋㅋㅋ

선물이나 줘야 그런거라도 하지, 우리에게 전혀 구미를 당기지 못한 운동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이후, 2017년 너무 운동을 안 하는 거 같아 달리기를 하자고 또 수정이를 꼬셨지만 수정이는 넘어오지 않았고 아무도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국 <혼자서> 2014년 그 때의 기억을 살려, 대회라도 있으면 뭐라도 하겠지 하는 생각에 손기정 마라톤을 신청해뒀었다.

손기정 마라톤은 매년 11월에 꼭 한번 열리는데, 나이키에서 주최하는 뭐더라 여자만 달리는 우먼스런인가.. 아무튼 그것과 같은 대회와는 달리 언제 신청해도 대회 신청이 가능해 우선 그거 신청해 놓고 살뺀답시고 달리기를 하곤 했었다. 우먼스런은 오픈하는 날 클릭 한 번 했더니 매진 떠서 당황했던 기억밖에 안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때도 나는 정솬이랑 미친듯이 싸우고 연락을 하다 안하다 하던 때였는데, 나는 말을 글로라도 하지 않으면 가시가 돋히는 요상한 부작용이 있는 여자라 혼자 시부렁 거릴데로 <세줄일기>라는 곳에 그 날의 기분이나 일상을 기록하곤 했었다. 마찬가지로 이 날도 손기정 마라톤 신청했다~와 같은 글을 올렸다.

나는 몰랐지만 솬은 지나가는 내 말을 고스란히 듣고 나의 세줄일기를 염탐하고 있었다. 내가 화날 때마다 솬의 욕을 여기다 달고 하는 건 또 어찌알고.. 그거슬 다 보고 있었답니까

하지만 게으름뱅이 킴썽은 달리기 연습은 거의 할까말까 하기도 했지만, 정말 결정적으로 대회 전날 이빨 임플란트를 시공...ㅋㅋㅋㅋㅋㅋㅋㅋ 절대 무리해서 운동하지 말라는 간호사 언니에게, <내일 마라톤이 있는데 나가면 안되나요?> 했더니 <절대 안돼요> 해서 죄책감 없이 기념품만 받고 잠만 잤다.

근데 정솬은,
나 몰래 대회를 신청해놓고 나를 깜짝 놀래켜 주려고 미친듯이 뛰어가서 반환점에서 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생각해도 넘나 웃긴 거

사실 정솬은 야구도 선수출신에 볼링도 만날 스트라이크 치는 남자에, 테니스 사병이자 화려한 족구실력으로 휴가를 맨날 받고,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운동꾼임에도 내가 솬 달리기 못하는 건 정말 잘 알고 있었기에, 달리기같이 재미없는 정적인 운동에 일가견이 참 없는 사람이 반환점까지 미친듯이 달려갔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웃겼다 정말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이번엔 같이 걷는다.
 
막상 엄청 싸우다가도, 어려운 순간에는 생각보다 마음이 잘 맞는 솬과 같이 걸을 시간이 기대된다. 등산을 할 때도 그랬고, 결혼을 준비할 때도 그랬고, 괌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그랬고, 순탄할 땐 그렇게 싸우다가도 막상 어려운 순간이 되면 합이 참 잘 맞는 정솬과 걸을 생각을 하니 역시 기대가 된다. 마치 두산과 한화로 열심히 싸우다가도 엘지만 만나면 한 마음으로 엘지를 욕하는 것처럼............

한강나이트런에는 15km, 25km, 42km 코스가 있는데, 15km는 시작하는 시간이 두 개로 나뉘어 신청할 수 있다.

길치인 나는 어떤 길을 걸어도 항상 헤매기 때문에 애초에 걷기가 내 삶에 장착 돼 있고, 또 길을 잃고 헤매는 것에 스트레스 받으면 나는 단명할 게 분명해 걷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며 헤매는 길도 즐겁게 걷곤 한다. 그냥 헤맨다고 생각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주의..

그래서 좀 오래 걷고 싶은데, 사실 솬은 오래 걷는 것에는 그다지 큰 기쁨은 없어보이니..

뭘 해도 항상 혼자였던 개인주의 김성은의  삶에 슈퍼도 혼자 안 보내는 정솬님 나타나 이제는 혼자가 좀 어색합니다. 15km만 걷고 싶은 솬의 맘 이해합니다만, 미래에 걸을 순례길 생각해서 42km 도전, 아 따랑합니다 아 따랑합니다 밤 새서 함께 할 생각하니 넘나 두근댑니다 따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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