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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살아가기/하루키와 고전을 좋아해

내 인생 2루타 쳐준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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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 가슴이 미어지게 헤어진 적이 있었다. 떠난 사람을 다시 잡는다는 게 그렇게 아프고 힘든 일인 줄 모르던 시절, 언제까지고 그 사람은 내 옆에서 당연한 듯 내 농담을 받아주며 곁에 있어줄 거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던 시절, 그 사람은 불현듯 내 곁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던 어딘가 우울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책을 옆에 달고 살았다. 내가 나타나면 보던 책 속에 책깔피 대신 영수증을 넣어 책을 덮고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웃는 듯 마는 듯하는 표정을 좋아했다.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잠시 멀뚱멀뚱 쳐다봤다. 나는 그냥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매번 헤어지잔 얘기를 하던 건 나였는데,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래며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항상 그 친구의 몫이었는데, 몇 천 번이고 바보같은 농담을 다 받아주겠다던 상냥하던 사람이, 그리고 여전히 상냥한 모습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이유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까지 단 한번도 누군가를 잡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울었다. 울면서 가지 말라고 잡았다. 그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인 "통한의 울면서 잡기" 였다. 


생각보다 여파는 컸다. 먹는 족족 토를 했다. 살이 무진장 빠졌다.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별의 아픔이란 것을 정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폐인의 삶을 살았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날 이렇게 지낼 순 없단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나는 아이스크림도 먹고싶고 빵도 먹고싶다고 생각했다. 수일이 지난 후였다. 겨우 수일동안 힘들어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너무 슬펐다. 근데 울면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너무 추워서 더 슬펐다. 어떻게 나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생각했다. 그 친구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읽고 있던 책을 내가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런 진부한 얘기를 하나 싶겠지만, 이게 내가 하루키를 처음 만난 시작이다. 그 전에도 책을 종종 잡곤 했지만 항상 삼국지나 초한지같은 중국 고전을 좋아했다. 대륙의 전쟁사가 나는 그렇게 재미있었다. 현대작가의 소설은 사실 잘 보지 않았다. 일본의 소설은 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수필은 종종 접하긴 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볼 생각은 그 전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하루키의 첫 작품으로 접한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만약 언더그라운드였거나 양을 쫓는 모험이었다면 생각보다 나를 위로하는 효과는 그닥 대단하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기사 일본의 사린 사건이 나의 슬픔을 어찌 위로하고 지금도 난해하게 느껴지는 양을 쫓는 모험을 봤다면 틈틈이 슬픈 생각이 덮쳐서 엉엉 울었을 것 같으니까. 


그 친구를 이해하려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점점 빠져들었다. 거짓말처럼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한건 처음이었다. 정말 너무 재미있어서 책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내 책을 읽었다. 정말 다행이었던건 하루키가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서 내가 읽을 책이 너무너무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다.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해변의 카프카, 양을 쫓는 모험, 태엽감는 새  등 하나 하나 섭렵해 가기 시작했다. 장편으로 시작해서 단편으로, 그리고 하루키의  수필까지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읽기 시작했다.


상실의 시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하루키에게 빠져버렸다. 왜 하루키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재밌으니까. 그냥 하루키의 책이 재밌으니까. 


심도있는 독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재미있게 책을 읽자 주의이다. 재미있으려고 읽는 책인데, 책을 읽다가 책을 싫어해버리면, 겨우 재미없는 책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소중한 취미생활을 잃는 다는 것은 정말 너무 재앙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냥 재미있는 책을 좋아한다. 그런 책을 하루키가 항상 써 준다. 너무 좋은 사람이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의 패턴은 대부분 비슷하다. 장편을 읽고 재미있어서 단편소설 모음을 읽다가 수필로 넘어간다. 하루키의 수필은 진솔하고 단백하다. 심지어 나랑 좋아하는 것이 비슷해서 읽는 재미가 배가 된다. 야구와 달리기. 하루키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명예회원일 정도로 엄청난 야구 광이다. 야구 광인거에 비해 응원하는 팀이 비실비실해서 조금은 안타깝지만 한화를 좋아하는 나와 그 점마저 닮아서 더 재미있다. 감정이입의 최고봉이다. 야구를 보다 소설 쓰기를 시작했을 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순전히 하루키 때문에 찾아간 메이지 진구 구장


그렇게 하루키를 좋아하니 하루키가 좋아하는 프란츠 카프카도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자이 오사무며 헤르만 헤세며 이거저거 집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확실히 고전에 빠져들게 되었다. 중국 고전도 재밌었지만, 서양의 고전도 스믈스믈 내 머리에 충격을 안겨주곤 했다. 그 때 당시의 사람들은 지금처럼 바쁘게 살지 않아서였을까. 생각을 많이 해서 였을까. 어쨌든 민음사 시리즈는 최애 시리즈들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많은 수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수필

 

왜 갑자기 잘 풀던 알고리즘을 내려두고 이런 글을 쓰냐고 하면, 내가 오랜만에 도서관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원을 다니며 7개월간 책을 손에 아예 잡지 못했다. 이런 해는 또 처음이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무 생각을 하고싶지 않을 때 보통 책을 읽곤 하는데, 사실 7개월간 재미있는 일만 가득해서 책을 잡을 일이 별로 없었다. 바쁘기도 바빴지만 그만큼 내가 책을 찾을 일이 별로 없었다. 


이전 블로그에 썼던 글이기도 한데, 거기에 이렇게 썼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도 하고 책을 읽을 일이 없기도 하다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병적으로 책을 찾곤 하는데, 요즘 책을 안 찾아서 너무 좋다고. 이런 날이 주우우욱 갔으면 좋겠다고. 근데 생각보다 세상은 만만치가 않고 오랜만에 책이 땡겼다. 그래서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다녀왔다. 컴퓨터 관련 도서가 아닌 2층 문학 책꽂이에서 순전히 나를 위한 책을 빌리는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근데 또 습관을 못 버리고 읽었던 책을 또 빌렸다. 읽은거 또 읽고 또 읽고..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야구 블로그도 지우고, 아파서 쓰던 병상일지 블로그도 지우고, 마침내 다른 주제인 알고리즘과 자바 블로그를 열어 다시 시작하고 나니 뭐라도 주절거릴 공간이 생겨서 기쁘다. 책에 관한 카테고리라 하루키 얘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쉬고 있을 때 책 많이 읽어야겠다. 틈틈이 내게 책을 읽을 시간을 강제로 부여해주는 백수생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말고요. 놀 때 신나게 읽자, 썽 기회다!


마음이 급하니 더 조급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느껴보았듯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진행한다고해서 그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다. 그렇게 가봐야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조금 더 준비하고 더 쌓아서 하고 싶었던 걸 하자. 타산지석이 안 되니 일일이 다 스스로 겪어봐야 알지. 그렇다고 한 번 겪은걸 또 겪을 필요는 없지 않냐.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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