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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학원 선생님으로 알바를 다니던 시절 언제나처럼 잠에서 깨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던 중 눈에 띄는 문장을 봤다.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너무 충격적이라 엄마 아빠에게 이런일이 벌어졌다며 소리쳤고, 눈을 못 떼고 계속 뉴스를 확인했다.
하지만 당연히 구조될거라고 믿고 있었기에 걱정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확인한다기 보단 언제쯤 구조되려나, 쟤들은 수학여행 추억 하나는 제대로 갖겠네 하는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올라왔고, 엄마 아빠와 함께 늦은 아침을 먹으며 요즘 기술이 확실히 좋아졌다며 다행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한 마디를 나누고 바로 일을 하러 나갔다.
알바를 마치고 언제나처럼 항상 만나는 친구들과 안양에서 약속을 잡았고, 카페에 자리잡고 앉아 매일 하는 수다를 또 한탕 하고 있을 무렵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오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턴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다 기억난다.
말도 안 된다고, 어떻게 그렇게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아닐거라고 결국 다 구할거라고 그렇게 우리끼리 희망에 찬 생각을, 하지만 확신은 가지지 못한채 헤어졌다.
그날부터 우리집 채널은 하루 종일 뉴스채널로 고정됐다.
뱃머리는 결국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200명이 넘는 숫자가 실종됐다는 문장만 계속해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적잖히 충격을 받았다.
뉴스가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고 믿기지 않았고 믿고싶지도 않았다.
아빠는 세월호 뉴스만 보면 채널을 돌리셨다.
야구도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결국 모두가 죽었고 죽은채로 바다에서 나왔다.
프란츠 카프카였는지 마르케스였는지 (수업을 똥으로 들어서 기억이 안난다 마술적 사실주의니까 아무래도 마르케스같은데 마르케스가 프란츠카프카의 영향을 받았으니 그게 그건가 아몰랑)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한 얘기가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냐는 물음에 나치가 유태인을 죽인 시체를 보는 것처럼 더 비현실 적인 일이 어디있냐고 이깟게 뭐 비현실적이냐고 대답했다던 일화가 생각났다.
21세기를 살면서 이런 상황을 눈으로만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고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나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한 번 이상 초지역에 있는 분향소를 방문했었다.
그곳에 가면
200명이 넘는 숫자의 영정이 빽빽히 놓여있었는데,
언제 방문해도 그 광경은 정말이지 익숙해지질 않아서, 마르케스인지 카프카인지 아무튼 그가 한 말이 어떤건지를 너무 실감하게 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었을까..
지금도 나는 할 수 있는게 없지만
적어도 나 한 사람은 계속해서 기억하고,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왜 그때의 행적을 30년간 기밀에 부쳐버렸는지
두고두고 기억하고 되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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