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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래를 개는 행위가 조금 소중하다.
어려서부터 항상 엄마는 아빠의 셔츠를 다렸다. 은행원이셨던 아빠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양복을 입고 출근하셨는데, 그로인해 엄마의 마지막 일과는 아빠의 셔츠를 다리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내 남편이 될 사람의 셔츠는 꼭 하얗고 빳빳하게 다려놓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뭔가 갓 빨은 세제 향이 날 것 같은 셔츠에서 따뜻함이 베어 나는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뭔가 케어받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남자는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는 느낌을 폴폴 내주고 싶었다. 아쉽게도 솬은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셔츠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다림질을 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또 솬은 주관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내가 사다준 옷이나 고른 옷은 절대 안 입기도 하지만, 양말 하나까지도 결사코 본인의 의지대로 입지만.... 그래서 결론은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줄 수는 없지만....
빨래를 할 때 만큼은 그 마음을 고스란히 가지고 한다. 항상 솬의 빨래부터, 얼룩진 것은 없는지 옷감이 상할만한 것은 아닌지, 하얀 옷인데 너무 누렇진 않은지 기타등등 괜시리 더 신경써서 옷을 빨게 된다. 내 옷은 그냥 마구잡이로 넣고 돌리면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건조기에서 막 꺼낸 빨래는 개는 시간. 나는 빨래를 개는 그 행위가 사실 굉장히 소중하다.
마음이 심난할 때, 다른 생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을 때, 복잡한 심경일 때 빨래를 하나씩 갠다.
이 때도 순서가 있다. 수건을 가장 먼저 개켜서 부피를 줄인 뒤 솬의 속옷을 개고, 그다음은 솬의 겉옷, 그 다음은 내 속옷, 내 겉옷 순이다.
빨래를 개다 보면, 솬이 어떤 속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주로 많이 입는지, 빵꾸는 안 났는지, 속옷을 더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알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깨끗한 옷을 입혀서 보내고 싶고, 구겨진 옷 말고 빳빳하게 이제 막 세탁한 옷을 상쾌하게 꺼내서 입혀 출근시키고 싶다.
가끔 이런걸 발견할 때면 솬이 무슨 일을 하든 후다닥 후다닥 하는 그 습관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ㅋㅋㅋㅋㅋ 아니 저걸 달고 신었으니 얼마나 까슬까슬 했을까.
아무튼 빨래를 개는 시간은 그런 시간이다. 마음의 평안을 찾는 시간, 동시에 내가 결혼하면 항상 하고싶어했던 일을 실행하는 시간.
솬은 뭐든 후다닥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빨래개기같은 정적인 활동은 매우 힘들어한다. 예전에 당산에 살 때, 솬이 개킨 빨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접은건지 접은척 한건지. 결국 솬이 개킨 빨래 전부를 내가 다시 갰고.. 일을 두번이나 하는게 싫어 빨래는 전적으로 내 일이 되었다.
사실 솬은 빨래를 개는 의의를 잘 모를 뿐더러.. 개지 않아도 전혀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꾸깃꾸깃 꾸겨져 있던 옷을 입혀서 보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솬은 알까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나의 빨래개는 행위와 솬의 설거지는 같은 맥락에 있다. 솬은 마음이 심난할 때, 또 뭔가 아무 생각을 하고싶지 않을 때 혹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설거지를 한다. 나는 설거지를 무지 싫어하는데 솬은 설거지를 좋아한다. 참 기분좋은 행위의 나눔이다. (하지만 내가 아끼는 그릇의 이가 나갔을 땐 말은 안했지만 10분 울었다)
그렇게 구리에서의 마지막 날, 쌓아둔 빨래를 두번에 걸쳐 한 뒤 열심히 개켰다. 일주일정도 있었을 뿐인데, 그 사이 빨래는 어쩜그리 많은지. 식구가 셋이 되니 빨래도 더 많아졌다.
구리에서의 일주일동안 나의아저씨 세번째 정주행도 마쳤다. 언제 봐도 지겹지 않은 나의 아저씨는 또 다른 데서 감동을 주고 심금을 울렸다. 빨래를 개며 조곤조곤 보고 있자니 괜히 울컥하는 드라마
명작이다.
또 당분간 오지 못할 우리집이라 조금은 치우고 가야할 것 같아서 이곳저곳 정리하기 시작했다. 밀린 빨래를 하고, 개킨 빨래를 옷장에 넣어두고.. 솬이 바빠 치우지 못한 옷장 정리를 하고 거실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다 쓴 디퓨저를 교체하고
옷을 입으려고 서랍을 열었을 때 정리된 옷들을 보고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그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란걸, 관심받고 있는 사람이란걸, 심지어 양말 한 짝도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꺼내 신고 가는 누군가의 남편이란걸 아침마다 알았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 작은 행복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솬님
직접 말 하면 절대 안 들으시니 여기에 남겨둡니다. ^_________^
1. 가스요금 납부 기한이 4월 30일까지입니다. 출장갔다가 돌아오는 즉시 납부해주세요 제발료
2. 야채박스 속 까만 봉지가 하나 있는데, 그 안에 방울토마토가 잔뜩 들어있어요 어머님이 먹으라고 일부러 챙겨두신거니 잊지말고 얼른 드세요 곧 물러버릴지도 몰라
3. 오이도 랩핑돼 있는게 있고 봉지 안에 있는게 있는데, 랩핑돼 있는거 부터 드세용 오이는 특히 금방 상하니까 빤리빤리!
4. 샤워 후 샤워커튼 제발 펼쳐주세요 빨간곰팡이 열심히 지우고 나왔어.. 심드러.. 펼쳐줘.. 뽀르빠보르..
5. 퇴근하고 나서 힘든 맘 백퍼센트 이해합니당 그래도 10초만 힘내서 옷을 걸어둔다면 다음 날 더 상쾌할거야!
6. 이불은 침대에서만 (하트) 부타캐용 (하트) 쇼파는 왠지 먼지가 무지 많을 것만 가탕 (하트)
7. 세탁기랑 건조기 돌릴 때 큰 단추가 있거나 쇠 금속이 달린 옷은 세탁망에 넣어서 돌려주세용! 엊그제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겉옷을 돌리는데 막 쇠 부딪히는 소리 너무너무 크게 들려서 찾아보니까 그게 세탁기나 건조기 파손을 일으킬 수 있대네.. 특히 겉옷 돌릴 때 꼭 세탁망에 넣어서 부타캐용 유리가 깨지는 수가 있나봐!
이상..
킴썽의 잔소리였습니다.
캬하하! 카톡으로 말하면 그 때 기억하고 또 까먹는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적어둡니다. 기억나라 기억나라 기억나라
참, 또 기억 못하고 이리저리 찾을 거 같아서 다시 말씀 드리면,
새로 산 반팔티랑 트레이닝복이랑 반바지 여기..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두꺼운 반팔 분명히 한여름에 더워서 못입겠다고 버럭 화낼게 분명하니 안 바꾸는걸 추천합니다!!!!
오늘도 주신 키보드로 일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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