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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주부이야기/후다닥 결혼준비 이야기

2018년 10월 3일 결혼식 식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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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도 못 올리는 티스토리
네이버는 좀 정리해서 일지처럼 쓰려고 남겨둔건데
확 블로그 이사가버릴까부다
ㅡ..ㅡ

동영상을 클라우드에 남겨두니 너므 용량이 많이 차서 블로그에 업로드 했당.
새록새록하다. 얼마 안 된 영상인데도 아줌마와 아가씨의 갭이 꽤 크다.



식전영상
https://m.blog.naver.com/sungeunbboz/22150996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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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봄 사진을 하도 찍어대다보니 클라우드가 꽉 차버렸다. 


이거저거 정리하던 참에 식전영상이 있길래 재생해 봤다. ​ 한 번 보니 멈출 수 없는 영상 ㅋㅋ ​ 


둘이 하도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다 보니 사진도 지웠다 다시 찍었다를 수없이 반복했고, 식전영상 만들 때는 으악 사진이 몇개없어! 하면서 어쩌다 클라우드로 넘어갔던 사진들을 보물찾기 하듯 끄집어내서 간신히 만들었던 기억 (ㅋㅋㅋㅋㅋㅋ솬은 그 고충을 모를기야) ​ 


결혼 후 거짓말 안하고 둘이 그냥 쇼파도 아닌 리클라이너 쇼파에 붙어 자리싸움 하면서 하루 웬종일 티비보다 떡볶이 해먹다 교촌시켜먹고 이게 하루 일상이어서.. 원래 이러고 살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 우리 연애때는 나름 이곳저곳 많이 다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기사 스팍이 뒤에 텐트도 싣고 다녔던 남잔데 분명 야영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왜때문에 야영을 쇼파에서 하고 잉는거죠 ​ 


언젠가 당산에 살 때 나보고 

<알고보니 나는 집을 좋아했던거 같아..>

라고 고백하며 방바닥에 널부러지던걸 기억한다. ​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왜 매번 그렇게 싸우고도 나한테 다시 연락했어? 

라는 질문에

 <특별한걸 하지 않아도 즐거워서> 

라는 말이 나를 사실 가장 감동시켰더랬다. (이봐 방바닥에 누워서 티비만 봐도 재밌잖아라는 말도 덧붙였다.) ​ 


사실 나는 그맘 때 너무너무 상처받은 영혼이었는데, 

이를테면 실패자라든가 삶을 너무 대충 산다든가 이렇게 대충 사는 너랑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 등의 말들로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 


24살 무렵부터 시작된 나의 무기력증은 모든 일에 실패를 가져왔고 그 실패는 나의 습관처럼 내 삶에 굳건히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났고 먼저 상처 받기 싫었던 나는 내 스스로 모든 커넥션을 잘라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고립시키고 있을 때 집안에선 큰 일이 벌어져 버렸고, 나는 우울증이라는 정신병까지 앓게 됐다. 


상처받기 싫어 모든 관계를 애매하게 지속했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다 주지 못했다. 다 줘버리면 또 상처받을 일만 남을 것 같아서, 마음을 찔끔찔끔씩 열고 있었다. ​ 


아닌 척, 쿨한 척 하는 게 멋있는 줄 알았던 중2병의 나는 그런 태도가 모든 만남의 문제가 된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야 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나를 치장하는데 바빴다. ​ 


18년 5월 정솬과 역대급으로 싸우기 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커플 혹은 부부상담을 신청해 놨었다. 꽤 전문적이고 비싼 곳의 상담이어서 검사지를 내놓을게 엄청 많았었다. 그 상담 받기를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대판 싸웠고 그 상담은 결국 못 가나 싶었으나 운명처럼 방문하게 되었다. ​ 


사실 괜히 왔다고 생각했다. 나보고 가면우울증에 심각한 심리적 불안상태라며 내 속을 다 헤집어 놓았기 때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 <얘도 결국 나를 떠나겠구나>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나에게 아무런 보호 없이 위태위태하게 날아다니는 아기새 같다며 만나려거든 나 심리치료를 꼭 시키고 만나라며 ㅋㅋㅋㅋㅋ 병자취급을 당했다. ​ 


그때 정솬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그때 마저도 어떻게 도망갈까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근데 의외로 날아온 답변은 <그렇게 힘든줄도 모르고 더 보듬어주지 못해 미안해>였다. ​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솟는다. ​ 


나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에요를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항상 외쳐왔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어둡고 무거운 내 단면을 쳐다보는게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이 더 많았던거 같다. 내 밝고 즐거운 면만 좋아하고 아껴주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근데 그걸 알아봐줘서 말뿐일지도 모르지만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해줄 수 없던 그 한 마디를 해준게 너무 고마워서 차에서 반대쪽만 쳐다보며 끅끅대며 울었다. ​ 


물론 그 뒤로도 세차게 싸웠다. 화내고 헤어지고 또 다시 화해하고 울고 욕하고 거듭 반복하다 6월에 찾아온 봄을 만나게 됐고 비로소 마음 놓고 이 사람에게 혹시 떠날까 무서워 주지 못했던 마음을 맘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 


원래부터 이런 관계를 원했던 솬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하도 싸워서 그런지 결혼 후에는 한 번도 안 싸울 만큼 싸움의 메뉴얼이 생겼다.  ​


항상 내 상태가 위태위태 해보여 걱정했던 대전친구들을 만났을 때 보자마자 들었던 말이 <드디어 행복해 보인다>였다. 드디어라는 부사구가 굉장히 크게 와닿았다. 


김성은이 이렇게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며, 결혼하길 잘했단다.  ​ 


나는 어쩌면 마음의 울타리를 찾고 있던건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 단정짓고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온힘 다해 사랑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내 두려움과 방어기제가 모든 나의 사랑을 방해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


 친구들 말대로 나는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하다. ​ 


한 없이 사랑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내가 원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그 사랑을 두 팔 벌려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 행복하다. ​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드높여줘서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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